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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재난에서 크리스마스를 해결하는 방법

야옹음매 2024. 11. 5. 01:34

 


 

보고서 작성자.___

 

 

이 재난 생활 지침서의 초안은 포드 북마크에 의해 적혀졌으나 복원를 거쳐 수정되었음을 알린다. 이하 내용은 '그 재난'에서 살아남은 이의 일기와  동행자와의 필담, 안내서 형식으로 되어있다. 내용은 당시 인류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이를 보고한다. 

 


 

재난 생활 지침서 그 열두 번째 시리즈

'그 재난에서 크리스마스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하여...'

 

작성자. 포드 북마크

 

 

 

 

 

 

 


지침서는 아주 낡은 종이 몇 장만이 표지와 내지를 감싸는 속지로 존재했다. 이를 제외한 내지의 전부는 대부분 동물의 가죽이거나, 현수막 조각이거나, 얇은 배낭이나 천막의 조각이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부분은 낡은 비닐 위에 얇게 글을 새기기도 한, 정성이라기엔 궁상맞은 부분이 느껴지기까지 하는 하나의 뭉치였다. (사실은 쓰레기 뭉치라고 적는 것이 더 나은 편이다. 이 고물로 엮어낸 책이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버리려고 했으니까.)

 

우선 첫 장에는 간단한 목차가 소개되어 있었는데 흐리게 남은 글씨는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었다. 5가지 말고도 더 많은 부록들이 있었으나, 뒷 장은 거의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필자는 이 다섯까지만을 보고한다. 

 


목차

 

1. 크리스마스의 날씨를 견디는 방법
2. 크리스마스의 허기를 달래는 방법
3. 크리스마스의 선물을 준비하는 방법
4. 크리스마스의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
[부록] 재난에서 크리스마스의 케이크를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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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한 목차 아래로 이어진 내용들은 재난 상황에서 꿈꾸지 못할 내용도 더러 있었다. 이를 읽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할 것이 분명했다. 굳이 선물을, 외로움을, 케이크를 재난 상황에서 신경 쓰고 있다니, 랩실에서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반응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전 시리즈(재난상황에서 살아남기 시리즈...)를 모두 해독한 사람이 말하자면 이는 첫 번째 살아남기 시리즈, [재난 상황에서 살아남기 1권](feat. 포드 북마크)를 본다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삶의 터전을 잃고, 생활을 잃은 이들이 인간임을 잃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사소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이다. 포드 북마크와 그의 동행자는 이를 잊지 않고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 사실들이 재난 속에서 이들을 살게 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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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크리스마스의 날씨를 견디는 방법

 

 

재난 상황에서도 크리스마스는 다가온다. 물론 크리스마스뿐이 아닌 설날, 추석도 다가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간의 마음을 벅차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크리스마스일 것이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한 해 동안 착한 일을 하며 지낸 어린아이에게 선물을 준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 이야기를 듣고 자란 어른들에게도 설렘을 주게 한다. 이 설렘은 함께하는 이들에게 어떤 선물을 줄지, 받을지 고민하게 한다. 그렇기에 비로소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12월은 이 재난 속에서 그나마 덜 추운 편에 속한다. 지구의 날씨가 어긋난 이후로부터 여름과 겨울, 봄과 가을을 구분 짓는 기준은 사라진 지 오래이고 더 이상 겨울을 제외한 계절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신비롭게도(아니, 다행스럽게도) 이 영원할 빙하기 속에서도 흐리게나마 계절이 존재한다. 지금 살고 있는 B211-3 구역은 12월에 눈보라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 거친 눈보라가 잠잠해지면 우리는 비로소 식량을 구할 수 있게 된다. 나와 데이비드, 그리고 같은 구역 사람들은 이를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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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1190일차 / 눈보라가 줄어들고 있다.
눈에 띄게 시야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방한 기지의 밖으로 나가도 괜찮은 수준까지 이르렀다. 아직까지는 멀리 나가기엔 무리지만 곧 있으면 탐사가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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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1192일차/ 눈보라가 멈췄다. 눈이 내린다. 
거센 바람이 멈추고 천천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들은 마냥 신나는지 눈을 뭉쳐놀고 있다. 데이비드는 여전히 날씨가 구리다며 툴툴댄다. 오늘정도라면 탐사가 가능한가 싶었지만 저녁부터 다시 눈보라가 시작되어 상황을 두고봐야할 것같다. 눈보라로 기지가 무너지지 않도록 보수공사를 해야겠다. 

/ 데이비드라는 이가 글쓴이의 동행자인 듯, 이후에도 계속해서 언급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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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1195일차/ 눈보라 없음!!
드디어 지겹던 눈보라가 끝났다 시야가 트여 사냥이 가능해졌다. 데이비드와 사냥팀이 벌써 순록을 잡아왔다. 크리쳐가 많은 구역이라 걱정했지만 다행인 것 같다. 순록의 상태가 나쁘지 않다. 뿔이 크고 단단하다. 각종 무기 제작도 가능할 것 같다. 고기가 많이 나와 일부는 구워먹기까지 했다. 남은 고기는 말려두었다. 장기적인 식량으로 사용가능할 것이다. 손질하는 데이비드에게 부탁해 순록의 가죽을 일부 얻어왔다. 이 재난 지침서의 표지를 순록 가죽으로 만들게 된다면 꽤 멋있을 것 같다. 

/ 재난 200일 차가 지나고 나서는 지구의 일반적인 생명체는 대부분 멸종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순록을 사냥, 해당 자료에 대한 분석과 조사가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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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1199일차/ 안개
오전에 살짝 안개가 끼고있다. 오후부터는 식량과 탐사가 가능할 것 같다. 이 재난 지침서를 더욱 풍부하게 할 탐사항목을 늘려보면 좋겠다. 
그나저나 곧 크리스마스이다. 데이비드는 어떤 선물을 받아봤을까?
재난 1200일차/ 맑음
데이비드가 평소답지 않게 추워한다. 날씨가 맑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요새 부쩍 추워한다. 손난로를 제작해보는 것을 어떨까? 크리쳐의 핵을 갈라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방한용품으로도 제작 가능하지 않을까?

/크리쳐의 에너지를 이용한 생활용품 제작. 과감하고 위험한 도전이지만 연구 결과 가능성 있음.
+해당 항목에 대해 자료조사 필요




재난에서 살아남을 크리쳐 손난로
크리쳐의 핵을 이용한 손난로 



준비물: 소형 크리쳐의 핵, 작은 주머니, 똑딱이 

1. 소형 크리쳐의 핵을 조심히 가른다.
연한 주머니 형태의 핵은 겉껍질을 가르면 쉽게 내용물이 흘러나온다. 단단하지 않으니 뼈 나이프로도 가능하다. 주먹만한 크기의 질긴 포도알 같은 내용물이 진득한 액체와 함께 흘러나오면 액체와 분리해둔다.
2. 가열한다.
작은 주머니 안에 핵을 넣는다. 달걀 노른자를 깨듯 조심히 으깬 뒤에 약불에 가열하기 시작하면 천천히 발광한다. 
3. 주머니에 넣는다. 
주머니 안에 액체를 조심히 붓고 똑딱이를 넣는다. 이후 한 김 식혀둔다.
4. 똑딱이를 넣고 주머니를 봉합한다. 
똑딱이는 깡통을 잘라 만들었다. 후에 똑딱이를 이용해 충격을 주게되면 열을 품은 크리쳐 핵이 따듯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재난 1202일차/ 눈이 내림
데이비드에게 손난로를 주니 처음에는 짜증내는 것 같았지만 한참 쥐고 있는 것을 보면 사용감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후엔 작은 개체의 크리쳐를 잔뜩 사냥해오기도 했다. 손난로를 잔뜩 만들어둬야겠다. 



 기적이 일어나면 몇 주간 다 함께 식량만을 찾으러 다닌다. 전투가 가능한 인원은 경계의 크리쳐에게서 구역 외곽을 보호하기도 한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남은 인원들(주로 청소년들과 몸이 약한 이들)은 방한기지를 보수한다. 이 과정이 꽤나 중요하다고 여기지만 데이비드는 가끔 현수막을 덧대 고친 천막을 보곤 비웃기도 한다. 사실상 방한기지조차도 크게 추위를 피하긴 어렵다. 아무리 천막을 보수하고, 방한용품을 들여놓아도 재난의 겨울은 매섭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며칠간 기적이 일어나는 동안은 인간답게 살 수 있다. 더 이상 식량이 부족해 나뭇가지를 끓여 먹거나 모래를 씹을 필요가 없다. 

추위를 견디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함께하는 이들이 있다면 언젠가 이 겨울이 잠잠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크리스마스의 허기를 달래는 방법

 

 

 크리스마스의 허기를 달래는 것은 다른 날들보다도 간단하다. 눈보라가 줄어들고 나면 사냥이 원활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원에는 짧은 풀들이 자라기도 한다. 여전히 상상하기 힘든 추위지만 점차 지구의 생태계가 적응하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곧 빙하기는 끝나게 될지도 모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지내게 될까?

 

 

 

 

/

뭐 하고 있는 거야?

지침서를 적는 겁니다. 재난을 기록하는 거죠

이 빌어먹을 눈덩어리 지구를 기록해서 어디다 쓴다고 그래?

누군가가 읽고 도움이 되라는 거죠

하여간 쓸모없는 짓이나 잔뜩하는구만

필요하게 되실걸요?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 재난이 시작되고 나서 그것만큼 바란 것이 없다. 재난은 갑작스럽지 않았지만 다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인류의 가장 큰 적은 예견하지 못한 사태가 아니라 알고 있음에도 안심한 안전불감증일 것이다.  인류는 기후 위기를 자초했고, 이를 묵인했다. 어쩌면 해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 같이 안심했다. 지구의 정점에 위치해 살아가던 자칭 고등생물은 삶에 안주해 멸망했다. 만들어진 따듯함과 만들 수 있는 것들에 의해 멸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재난을 기록해야 만한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재난을 기록하고 예방해야 하기 때문에 이 지침서를 적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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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1204일차 맑음
서서히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릴만한 날씨가 되어가고 있다. 오늘은 언덕을 넘어 연한 풀 뿌리를 몇 개 캐왔다. 데이비드가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으니 괜찮을 것 같다.

 

 

 


재난에서 살아남을 풀 뿌리 스프

재료: 연한 풀뿌리, 소금, 저장해 둔 육포

1.재료손질
연한 풀 뿌리는 깨끗하게 씻고 겉 껍질을 까서 더 연하게 만든다. 잘게 썰어두면 어린시절 먹던 야채와 얼추 비슷하기까지하다. 위로 난 잎들은 모두 제거한다. 이 대지를 뚫고 나온 풀잎들은 전부 크리쳐와 그 부속 생명체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강한 독을 가지고있다. 
2. 끓인다. 
풀 뿌리를 넣고 저장해둔 육포를 몇 개 잘라 넣는다. 소금이 있다면 넣어도 좋다. 심심한 맛을 살려내줄 것이다.

 

/

포드, 이게 맛있다고 적어둔 게 아니지?

괜찮지 않았나요?

우리가 몇 년간 이딴 것만 먹고살았다는 걸 기억해...

통조림을 먹은 지가 오래되어서 이딴 것도 맛있다고 느끼는 거겠지

... 데이비드 씨가 제일 많이 드셨잖아요

 

 

 

작년의 크리스마스와는 또 다른 기후들이 관측되고 있다. 이맘때의 날씨는 원래 이렇게 따듯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쩌면 우리는 이번 크리스마를 기점으로 겨울을 벗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지구의 선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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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1210일차/ 맑음
손난로를 잔뜩 만들어두고 식량도 어느정도 확보하니 든든하다. 오늘의 사냥 전리품은 토끼와 같은 소동물들이었다. 고기를 작게 갈라 스튜를 끓이니 다들 맛있게 먹어주었다. 레시피를 적어둘까? 

/이 근방의 생명체들은 전부 크리쳐의 감염이 시작됨이 보고 되었음. 특히 지침서가 발견된 지역은 농도가 심했다고 함.

 

/

그러니까 레시피는 그만 적어두라니까

그렇지만 오늘 저녁은 정말 괜찮았잖아요.

 

 

 


재난에서 살아남을 고기 스튜

재료: 사냥해 온 사냥감, 약간의 채소와 같은 풀뿌리, 각종양념

1. 재료 손질
사냥감들의 털이 억세고 가죽이 질기기 때문에 전부 제거하고 속살만 사용한다. 풀 뿌리도 잎과 껍질을 제거하고 썰어 준비한다. 
2. @선생의 요리연구서를 참고해 스튜를 끓여본다.
잘게 썬 고기류를 양념해 우선 불에 짧게 볶는다. 고기가 살짝 익게 되면 풀 뿌리도 함께 넣는다. 살짝 쌉싸름한 맛이 감칠맛을 올려줄 것이다. 이후 물을 붓고 약불에 오래 끓인다. 고기가 연하게 찢어지도록 익으면 먹어도 좋다. 기호에 따라 소금을 더 뿌렸다. 

 

 

재난 1220일차/ 맑음
저장고에 넣어둔 순록 고기가 몇 개 썩는 것 같아 폐기했다. 원래 이렇게까지 빠르게 상하진 않는데.... 데이비드씨가 굳은 표정으로 불을 피워 전부 태워버렸다. 고기 타는 냄새가 아닌 것이 코를 찔렀다. 시큼하기도하고 마치 플라스틱이 타는 것처럼 텁텁한 냄새가 났다. 괴로운 냄새에 먼저 방한기지로 들어왔다. 

/냉동창고와 같은 방한기지 식량창고에서 식량이 썩는다고 기록, 썩은 고기를 태우니 마치 플라스틱이 타는 듯한 냄새로 보아 해당 식량이 크리쳐에 감염되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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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1222일차/ 안개
다시 안개가 깔렸다. 오전 내내 데이비드씨가 불편한 기색이다. 

 

/

... 괜찮아 보이네

뭐가요?

전에 먹은 스튜 다들 게워내던데

정말 고기가 상했었나 봐요...

 

 

 

세 번째 크리스마스의 선물을 준비하는 방법

 

 

 

 거주하고 있던 구역 주변의 크리쳐들의 동세가 이상해졌다. 며칠 전부터 크리쳐들의 울음소리가 크게 울리기 시작하더니 방한 기지 주변까지 작은 크리쳐들이 덤벼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끝없이 내려앉는 안개 때문에 다들 고난을 겪고 있었다. 잠시라도 밖을 나서는 이들은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고 크리쳐의 먹이가 되었다. 밤마다 죽은 동료들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크리쳐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날에는 다들 귀를 감싸고 잠을 청했다. 다른 구역보다 함께했던 시간이 유독 길던 방한기지 멤버들이었기에 다들 더욱 힘들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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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1224일차/ 
날씨를 비롯해 여러가지 문제가 생겼다. 크리쳐가 날뛰는 와중에도 데이비드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지 주변을 파헤치는 소형 크리쳐를 처리했다. 밤마다 울어대는 중형 크리쳐들의 환청에도 데이비드씨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동료의 죽음에도 불안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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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1228일차/여전히 안개
안개가 심해지는 탓에 다들 밖으로 나서지 못했다. 안개가 심해질 무렵에서야 상한 고기들을 발견해 추가로 사냥을 하지 못했고 우리 기지는 다시 허기와 추위 사이에서 싸워야했다. 데이비드씨와는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다. 다른 이들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잠을 자거나 누워서만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재난 1229일차/ 안개가 줄어든다. 
안개가 줄어들자 크리쳐들도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한기지가 그들의 눈에 띈 것은 틀림없다. 여전히 밤마다 동료들의 원망스러운 울음이 들려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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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에도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이제는 잎이 다 떨어진, 기지에서 멀리 떨어진 숲에서부터 기지 앞에 닿은 강기슭까지 낮은 포효소리가 울려왔다. 검은 울음소리에는 원망이 섞여있었고 기지 안에 숨을 죽이고 있던 모두는 귀를 틀어막기 시작했다. 새벽이 다가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며칠 전 불침번을 서던 케빈의 비명이 숲에서부터 날카롭게 들려왔다. 안개가 시작되고 나서 근방에 나타나기 시작한 중형 크리쳐들의 환청 하울링이었다. 

 

포드는 이 울음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침상 머리맡에 두던 종이뭉치를 꺼냈다. 다들 연료로 쓰일 종이를 낭비하는 포드를 야유했지만 포드는 완고했다. 지침서를 완성하고 싶다며 매번 종이 뭉치를 품에 안고 다녔다. 이 재난에서 조금이라도 특이 사항이 생긴다면 그게 뭐든 적어내려 갔다. 

 

그렇지만 그날의 밤은 조금 다르게 운을 뗐다.

 

포드는 옆에 가만히 앉아있는 데이비드를 살짝 쳐다보았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침낭을 아직 접어둔 채였다. 기지 내에서 가장 이르게 일어났다가 가장 늦게 잠든다는 말이 실감 났다. 그렇기에 잠들지 못하던 날 포드는 데이비드에게 다가갔다. 케빈의 울음소리가 가까운 귓가에서 울리고 있었고 포드는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

크리스마스에는 보통 뭐 하고 지내셨어요?

교회.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질문에도 적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저 남자는 뭘 하면서 지냈을까. 역시 군인이었다니까 크리스마스에도 평범하게 총기관리나 하고 있었을까? 그러나 포드의 생각과 달리 데이비드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크리스마스에는 가족들과 도시 외곽의 교회를 갔다는 것. 얼마 없는 휴가를 당겨 크리스마스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전쟁이 나기 전까지는 어린 여동생을 놀아주기도 했다는 대답에 포드는 살짝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전혀 그렇게 생기지 않으셨는데요 라며 키득거리자 짧게 이마를 얻어맞으면서도 신기했다. 

 

/

너는?

 

그랬기에 데이비드 또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쑥스럽기도, 당황스럽기도 했다. 평소에 다른 사람들과는 대화를 잘하지 않는 편이었고, 포드와 대화를 나누더라도 이런 낯간지런 말들보다는 당장 오늘 저녁은 어떻게 할지, 내일 날씨가 어떨지에 대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어색하게 느껴짐이 당연했다. 속 살이 불편하게 내려앉는 기분 속에서 어색한 공기가 폐를 채우기 시작했다. 데이비드는 살짝 용기를 냈다.

 

/

크리스마스에 다 함께 케이크를 만들어서 파티를 했어요.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그럴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포드와 지내는 동안 데이비드는 이 재난 속에서 크리스마스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눈이 세계를 덮고 강이 얼고 밤마다 대지가 빛나는 순간이 찾아와도 격렬한 추위에 잊고 살았던 단어들이 떠올랐다. 영원하지만 답답할 하루들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포드와 지내는 하루들이 그랬다. 이 재앙 같은 눈더미에서 다시 일상이 생각난다. 익숙하게 지내던 전장보다도 어느 하루 잠깐 지냈던 일상을 떠올리게 했다. 포드가 말하는 것들이 새롭게 데이비드를 채우고 있었다. 

 

어쩌면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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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1230일차/ 안개가 걷혔다. 
데이비드씨와 사냥팀이 장기 사냥을 떠나기로 했다. 관측팀에서 약 이틀간 기상악화는 없을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틀간 그들은 많은 사냥감과 연료를 찾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유지보수팀은 기지를 보완하기로했다. 
재난 1231일차/ 
기지를 보완하는 내내 크리쳐 오염이 시작된 인원들이 발견되었다. 이전의 식사에서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루 빨리 해독제를 가진 다른 구역과 만나야할 것 같다. 안 좋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어서 데이비드씨가 돌아왔으면...

/오염으로 인한 크리쳐화가 진행됨이 발견, 해당 자료의 작성 시기가 ------정도로 예상됨.

 

 

 

 

 

크리스마스의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

 

데이비드 씨를 비롯한 사냥팀의 귀환이 늦어지고 있다. 방한기지 내부의 분위기 또한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식량 창고로 사용하던 방한기지의 지하는 크리쳐 오염이 시작된 이들의 격리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동료들의 오염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크리쳐 오염이 시작된 이들은 극도로 다른 개체에 의존한다. 우주를 배회하다 지구에 안착한 이들은 외로움을 느낀다. 빳빳하고 거친 털은 다른 개체와 접촉할 때 부드러워지고 검게 물들어있는 눈도 다른 개체를 바라볼 때 비로소 안락함을 찾는다. 함께 할 때 살아있음을 느끼지만 함께 죽어가는 이들은 왜 이 겨울에 정착했을까...

 

격리실로 이동한 이들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낮아지고 있다. 인간의 목소리와 같은 음역대에서 서서히 낮아지는 것이 느껴지면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다. 사냥팀이 돌아오지 않는 동안 ◼◼◼이 지났고 설상가상으로 눈보라가 시작되었다. 눈보라는 사냥팀을 더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모두 함께 이 재난을 파해쳐 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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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일차/날◼◼◼말◼◼
귀환이 늦◼진다. 통신은 아직 끊기지 않았다. 크◼◼의 공격을 받아 위험에 처한◼ 것 같다. 조심히 돌아오길. 
방한기지에서 벌써 8명이나 ◼염되었다. 감염된 이들을 격리하자는 의견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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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연락두절... 다들 불안해한다. 
재난
이럴 때 더 침착해야한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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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12◼4일차/ 
격리실에 가둔 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이번엔 오랜만에  지침서를 꺼내들었다. 지침서에 더 적을 게 없다... 이럴 때 데이비드씨라도 있다면 ...
재난 ◼일차
이제는 숫자가 무의미하다. 며칠 째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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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12월 13일
그러고보니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잘 모르겠다. 곧 크리스마스인데 데이비드씨는 언제 오는거지? 오기 전까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어야겠다. 다 함께 만들면 재미있을텐데...

재난에서 살◼남을 

크◼◼마스 ◼이크 레◼◼

 

재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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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2일차◼◼맑음
격리한 이들의 포효가 심해진다. 관◼결과 이들은 점점 서로 들러붙는다. 이미 인간의 형체가 아닌 것처럼 거칠고 검◼ 피부조직이 자라났다. 이들은 개체와 개체 사이가 멀어◼록 흉포해진다. 서로의 체온을 확인할 정도로 가까워지면 그◼ 진정된다. 이들은 함께하고 싶어한다. 데이비◼◼고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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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같잉
◼다같이함께
◼그
러고보니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기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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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확인불가

/감염된 것 같다

 

방한 기지 내부의 추위에도 손 끝이 얼기 시작했다. 기지 내부의 온도를 유 유지장치가 고장 났으며 기지를 보수하던 이들의 대부분이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를 제외하고는 ◼염되지 않는 이들이 없다. 홀로 사냥팀이 도착하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점점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이제는 감염되었음을 숨길 없다. 더 이상 무전이 오지 않는다. 데이비드가 오지 않을

/ B211-3 구역의 방한기지 감염시기를 예상 가능


 

사냥팀의 기록_by. 데이비드 크림슨

 

포드 녀석의 그 지침서라는 것을 도와주기로 했다. 제대로 된 지침서를 완성하고 싶다며 전부터 사냥팀을 따라다니고 싶어 했으니 이번 사냥팀 기록을 적어준다면 도움이 되겠지. 귀찮지만... 선물이라고 해야 하나?

/해당 지침서는 위와 같이 다른 이의 시점에서도 적혀있어 완성도가 뛰어난 편이다. 덕분에 우리 연구팀은 사냥팀의 동선과 사냥 방법을 조사할 수 있게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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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1일차
안개가 사라져 사냥과 탐사가 가능해졌다. 방한기지 주변은 크리쳐가 많이 몰려있기에 주변을 벗어나기로 한다. 포드의 지도를 빌려 설명하자면... 바늘 숲 주변으로.
사냥 2일차
돌아가기로 하던 차에 부상을 입었다. 연달아 나타나는 크리쳐들의 행렬이 이상하다. 그리고 날씨가 좋지 않다. 서둘러 돌아가야한다. 
사냥 3일차
통신이 불안전하다. 서둘러 돌아가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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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조난 5일차
며칠 전부터 방한기지와 연결된 무전이 닿지 않는다. 통신에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 포드와 직속 연결 되어있는 무전도 먹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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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난 8일차 
바늘 숲에서는 겨우 빠져나왔지만 기지로 가는 길을 찾기 어렵다. 눈보라가 몰아치고있다. 포드 녀석이 왜 그렇게 기록을 해야한다고 했는지 이제는 좀 이해가 갈 것 같다. 온통 새하얀 눈밭에 서 있다보면 제정신으로 버티긴 어렵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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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난 12일차
기지로 향하는 길을 겨우 찾은 것 같다. 크리쳐의 하울링이 길게 들리고 있다. 설마 기지가 크리쳐 공격을 받는 건 아니겠지.

 

조난 2주 차에 들어서야 겨우 기지로 돌아옴. 그나마 기지에서 많이 멀지 않은 숲이라서 눈보라 속에서도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음. 기지는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온도 유지 장치가 고장남. 게다가 입구가 안쪽에서 막혀있어 사냥팀이 진입 불가. 여전히 통신이 안된다. 바깥에서 소리침에도 불구하고 포드가 대답이 없었다. 포드를 비롯해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다. 

 

크리쳐의 하울링이 들린다. 

 

 

긴급하게 기지의 입구를 뜯고 들어감. 방한 시트가 붙은 탓에 문을 뜯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진입하는데 오래 걸렸다. 꼬박 3시간이나 문짝이나 뜯어대고 있었다. 젠장할

 

이후에 기지 안으로 들어서니 크리쳐에게 감염되었을 때와 같은 유독가스 냄새가 남. 마치 지난번 순록 고기가 썩을 때와 같은 냄새에 다들 코를 틀어막았다. 아무래도 기지가 감염된 것 같음

 


 

감염된 기지_by. 데이비드 크림슨

 

기지에 들어서니 온통 검은 토사물로 가득함. 검은 털들이 흩날리고 있었고 포드 녀석이 그렇게 떠들어대던 위생관념이 뒤틀린 상태. 게다가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고 지하에는 그동안 우리의 동료였던 것으로 보이는 크리쳐들이 둥지를 틀고 있음 생존자는 없어 보인다. 서둘러 다른 구역에 구조 요청을 하고 살아남은 팀원들이 이주하기로 함. 

 

감염된 기지 3일차
다행히도 강가 건너에 있던 B211-5구역 사람들이 구조대를 보내주었다. 얼어붙은 강만 넘어가면 금세 다들 이주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보다 더 큰 시설이 있으니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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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기지 4일차
나는 여기에 남기로 했다. 누군가는 기지를 정리해야하기 때문. 그나저나 포드 녀석이 보이질 않음. 다른 곳으로 이주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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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기지 5일차
다른 구역에도 포드 북마크의 신분을 가진 이주자가 없다. 결국 수색을 마친 뒤 내일 다른 구역으로 이주하기로 했다. 
감염된 기지 6일차
기지 내부에 잠겨있는 방을 찾음. 여기를 수색해야할 것 같다.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그 망할 지침서라도 찾았으면.

 

기지 내부에서 잠겨있던 방 하나를 찾았다. 통신제어기가 있는 가장 좁은 공간이다. 혹시 여기에 숨어있는 건가? 기지 내부의 문들은 전부 추위를 막기 위해 단단하고 두꺼운 철제로 되어있다. 게다가 망할 유지장치가 망가져 문 틈이 얼어붙은 것 같다. 열려면 꽤 고생할 것 같은데...

 


 

굳게 닫힌 문이 비로소 열렸다. 두꺼운 문에 계속해서 뜨거운 물을 붓고 도구를 이용해 문을 뜯어내는 수준에서야 문이 열렸다. 통신 제어실 안에는 작은 평수를 가득 채운 통신 기기와 구석에 쭈그려 앉은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조금 야위어 보였고 바닥에는 즐겨 사용하던 브랜드의 펜과 모르는 이가 얼핏 본다면 쓰레기로 오인할 정도인 '지침서'가 있었다. 지침서를 들어보니 사냥을 떠나기 전보다 두께가 늘어있었다. 내용들은 하나같이 전부 쓸 모 없는 우스운 내용들이었지만 읽는 재미가 있었다. 데이비드는 간간히 적힌 포드의 사담을 읽으며 인상을 찌푸리기도,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데이비드는 지침서를 간단히 읽고 한참을 고민한 뒤에야 눈앞의 비극을 볼 결심이 섰다.

 

"... 어이 범생이"

 

무릎을 감싸 안은 채로 고개를 묻고 있는 그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뒷 목은과 뺨, 두꺼운 옷 밖으로 드러난 손목과 발목에도 빠짐없이 검은 돌기가 조금씩 자라나 한눈에 보기에도 크리쳐에 감염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포드..."

이름을 불렀음에도 대답이 없었다.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아 순간 죽었나, 싶었다. 데이비드는 방한기지의 누구보다도 과묵했고, 감정이 동요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손이 살짝 떨리기까지 했다. 몇 번이나 일어나지 않는 포드를 보며 데이비드는 약간의 조급함을 느꼈다. 이미 죽었음을 인지했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판단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크리쳐 대응 참고서에 나와있는 규칙을 한 번에 세 가지나 어기기까지 했다. 감염된 이를 만지고, 말을 걸고, 같은 공간에서 호흡을 하는 것조차 금지된 세상에서 데이비드는 처음으로 감염된 이를 품에 안았다. 차갑게 몸이 식은 포드의 몸은 데이비드의 품 안에서 한 참이 지난 뒤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뺨에 잘게 돋은 돌기만이 쿡, 쿡, 거리며 데이비드의 어깨 한편을 찌르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어깨에 닿은 감각은 순식간에 날카롭게 데이비드를 꿰뚫었다. 크리쳐의 감염된 시체는 공격성이 있기 때문에 시체라도 방심하면 안 된다. 규칙을 잊은 탓이었다. 단단하게 포드와 데이비드의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크리쳐 조직은 삽시간에 포드의 전신으로 뻗어나갔다. 숨이 다한 구강에서는 옅은 떨림이 느껴졌고 닫힌 눈꺼풀이 미약하게 깜빡였다. 곧이어 오랫동안 잠겨있던 포드의 입가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데이비드 씨"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이 것은 포드가 아니었다. 포드의 신체 반응은 이미 죽은 시체에 불과했다. 그 어떤 말이 나오더라도 침착해야 했다. 이 것은 포드 북마크가 아닌, 그저 인간의 환심을 사기 위한 괴물새끼일 뿐이니까. 그러나, 데이비드는 무전기에서도, 문 앞에서도, 방금 전까지도 들을 수 없었던 소리에 무력하게 반응했다. 어깨를 꿰뚫으며 더욱 깊게 파고드는 크리쳐 조직 탓에 포드와 데이비드의 신체는 더욱 밀접하게 겹쳐졌다. 잠잠하던 상대의 심장이 뛰는 미약한 진동, 두근대는 소리에 데이비드는 우습게도 상처가 벌어지는 이 상황이 안심하고 있었다. 평소의 데이비드였다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데이비드 씨 보고 싶었어요... 못 보고 죽어버리는 줄.. 알았는데."

 

포드라기엔 괴물 같은, 괴물이라기엔 동행인인 사람의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속삭였다. 중첩되는 고통에 입가에서도 울컥 핏물이 올라왔다. 밀어내려 하면 크리쳐 조직이 점점 더 깊게 가슴팍을 뚫고 들어오는 탓에  몇 번이나 그를 떼어내려 했지만 결국엔 할 수 없었다. 더 깊게 그를 껴안기만 했다. 

 

통신이 두절되고, 부상을 입고, 감염된 기지를 발견하고, 지침서를 읽어보는 순간까지 데이비드는 굳게 결심한 것이 있었다. 포드를 혼자 두기엔 재난이 너무나 혹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어쩌면 그 하찮은 글들을 읽는 시간 동안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시시콜콜하던 일상을 떠올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인간이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일지도, 또 어쩌면 데이비드 또한 감염되었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함께 지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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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부록] 재난에서 크리스마스의 케이크를 만드는 방법

 

 

"... 앗 지금 넣으면 안 된다니까요?"

 

푹, 흩날리는 가루들이 허공을 떠돌았다.  포드는 데이비드를 향해 마치 어린아이를 혼내는 투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는 곧 짜증을 내며 탁자 위에 엎어진 밀가루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방한 기지의 사람들은 데이비드의 그런 행동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고 다들 포드를 향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데이비드를 통제할 수 있는 녀석은 너뿐이라나, 다들 그렇게 웃었다.

 

사건의 발단은 며칠 전, 탐사였다. 데이비드는 다른 모든 날들과 같이 맑은 날에는 멀리 있는 폐쇄된 마을까지 탐사를 나갔다. 종종 포드를 데리고 둘이서 나가기도 했는데 전부터 그 종이 뭉치에 필담을 하면서부터 부쩍 그런 날들이 늘었다. 재난이 일어나 온 세상이 눈이 파묻힌 세상 속에서도 조사를 하고, 기록을 하는 취미가 있던 포드는 데이비드와 친해지고 나서부터 탐사에 데려가게 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평소 데이비드는 무뚝뚝하고 과묵한 탓에 다른 사람들이 크게 말을 걸지 않았고 대부분 대화하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 덕분에 생긴 특유의 카리스마에 더 심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의외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부담이 없었고 오히려 가끔은 심심한 기분을 풀기 위해 다른 무리에 툭툭 말을 걸기도 했으나 다들 데이비드를 무서워해 길게 지내는 법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떠들기 좋아하는 포드가 생기니 조용한 설원을 탐사하는 데에는 포드만 한 파트너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 탐사에서 베이커리를 발견해 그와 관련된 각종 서적을 모아 온 포드는 데이비드에게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자며 신이 나 떠들었다. 책에 쓰여있는 재료들은 하나같이 이 재난 속에서 찾기 어려웠고 극도로 사치스러웠지만 재난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는 데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포드는 더 특별한 일들을 해야 한다며 데이비드를 설득했다. 물론 데이비드는 당장 내일 먹을 것도 부족하다며 포드를 얌전히 방한기지에 데려다 놓았다. 그러나 포드 몰래 무리해서 탐사 범위를 넓히고, 다른 구역들과 교류까지 해가면서 재료를 모은 것은 방한기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벌써 2주가 지나서야 모든 재료를 모았다. 데이비드는 조금 쑥스러운 듯 재료들을 들고 여전히 지침서를 적느라 분주한 포드 앞에 내려두었다. 테이블에 낯선 식재료들이 내려앉는 것을 보고 몇 초나 지난 뒤에야 이 재료들의 정체를 깨달은 포드는 데이비드에게 연신 매달리며 감사를 표했다.

 

"그러니까 언제까지 저어야 하는 거냐고..."

 

곧 10분이 다 되어가는 동안 휘핑을 치고 있는 케빈이 말했다. 테이블에 흩날리는 밀가루를 덮어쓴 포드는 다시 한번 책을 흘깃 보며 휘핑 모양을 가리켰다. 새 부리 모양인지 새 꼬리 모양인지 괜히 있어 보이는 설명들로 가득한 조리방법에 케빈은 지겨운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데이비드가 이틀이나 연락을 돌려 산 너머에 있는 구역 방랑자들에게 구해 온 달걀을 소중히 대해야 했기 때문에 방한기지의 사람들은 모두 돌아가며 휘핑을 쳐대고 있었다. 

 

데이비드와 포드는 겨우 반죽을 완성했고, 조잡하게 만들어진 화덕으로 케이크 틀을 넣었다. 케이크를 만들겠다는 명목으로 기지 내의 조리시설이 눈에 띄게 변화한 것도 전부 포드 덕분이었다. 포드의 열정적인 설명과 연구, 그리고 위생관념으로 조리실은 파티시에의 주방 못지않게  화려했다. 벽돌과 바위를 올려 만든 화덕, 스무 개의 깡통으로 만들어진 케이크 틀, 이틀 동안 깎아 만든 휘핑기까지, 다들 귀찮은 티를 냈지만 재난 속에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힘내고 있었다. 

 

"자! 어서어서 서두르세요 데이비드 씨!"

"재촉하지 마! 이러다가 다 뭉개진다고"

"뭉개지지 않게 서두르세요!"

 

휘핑이 끝난 생크림은 설탕이 부족해 전혀 달지 않았지만 케이크를 멋 내기에 충분했다. 딸기나 포도 같은 과일보다 산에서 자란 조잡한 열매들로 만들어진 케이크는 나름 그럴싸했다. 모두 함께 만들어낸 재난 속의 첫 케이크였다. 완성된 케이크는 달지도, 푹신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았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저 작은 케이크로 10명이 넘는 인원이 맛을 보는 수준이었지만 다들 배부르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때 누군가 작게 소리쳤다. 재난 속에서 잊고 있었던 한 해의 마무리이자 행운을 빌어주는 새해인사. 메리 크리스마스. 그 작은 외침을 기점으로 방한기지의 모두가 서로에게 행복을 속삭이기 시작했다. 데이비드는 이 잠깐의 순간동안 재난을 극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새벽이 지나는 동안 방한기지는 오래도록 밝았고, 매서운 추위가 감도는 동안 방한기지의 그 누구도 추위를 타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재난 속에서도 인류는 살아남고 있었다. 내일을 두려워하면서도 말이다.

 

"데이비드 씨!"

어깨에 살짝 닿은 얇은 손가락이 데이비드를 부르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포드가 얼굴에 잔뜩 크림을 묻힌 채였다. 너도 나도 장난을 치는 듯했다. 포드는 잠시 머뭇거리다 손가락에 묻은 크림을 데이비드의 콧등에 쿡, 찍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만큼은 따듯해서일까. 배가 불러서일까. 어둡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포드의 웃음이 너무나 즐거워 보여서일까. 데이비드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입에서 한 해의 행복을 축복하는 말을 굴리기 시작했다. 내년이라면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메리 크리스마스. 포드 북마크"